[로마서 1:1 강해: '바이크라'와 '에클레시아'의 완벽한 성취]
로마서 1장 1절의 중심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이 중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두 가지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클레토스(부르심)'**와 **'아포리스메노스(구별됨)'**입니다.
이 두 단어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닙니다. 히브리 성경의 **'바이크라(레위기)'**와 신약의 **'에클레시아(교회)'**가 어떻게 이 한 절 안에서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열쇠입니다.
1. 클레토스(κλητός): '바이크라(וַיִּקְרָא)'의 신약적 성취
먼저 **'클레토스'**는 한국어 성경에서 레위기로 번역된 히브리 성경의 원제, **'바이크라(וַיִּקְרָא)'**의 개념을 계승합니다.
'비아크라'의 히브리어 문법: 와우(Vav) + 미완료(Imperfect) 시제
'바이크라'는 '카라(קָרָא, 부르다)' 동사의 **미완료형(Imperfect)**인 '이크라(יִּקְרָא)'에 접속사 '와우(ו, And)'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미완료(Imperfect)의 본질: 히브리어에서 완료형(Perfect)이 '동작의 끝'을 의미한다면, **미완료형은 '동작의 진행'과 '계속'**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행위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신학적 의미: 끝나지 않은 부르심 (The Ongoing Call)
그러므로 '바이크라'는 단순히 "옛날에 모세를 불렀다"로 끝나는 말이 아닙니다. 문법적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부르시고 계신다"**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위기에서 모세를 부르신 그 음성은 과거에 멈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Still) 울려 퍼지고 있으며, 그 부르심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어 다메섹의 바울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신약의 성취 (클레토스):
바울이 쓴 **'클레토스'**는 바로 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부르심(바이크라)'**에 바울 자신이 포착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헬라어 문법 (동사적 형용사, Verbal Adjective): '클레토스'는 '칼레오(καλέω, 부르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초대받은 손님' 정도가 아니라, 왕이나 신적 권위에 의해 '소환된(Summoned)'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학적 의미: 레위기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성막에서 모세를 '바이크라(그리고 그가 부르셨다)' 하심으로 율법의 거룩함이 시작되었듯, 이제 동일한 하나님께서 바울을 **'클레토스(부르심을 입은 자)'**로 소환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부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하심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2. 구별된으로 번역된 아포리스메노스(ἀφωρισμένος)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의 실존적 정의이다.
**'아포리스메노스'**는 한국어 신약에서 교회로 번역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헬라어 문법 (완료 수동태 분사, Perfect Passive Participle):
수동태: 내가 나를 구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구별 '되어진' 것입니다.
완료 시제: 과거의 어느 시점에 구별되었고, 그 구별된 효력과 상태가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신학적 의미: '에클레시아'를 **'세상 밖으로(엑크, Ek) 불러냄(칼레오, Kaleo)을 받은 무리'**라고 정의한다면, '아포리스메노스'는 그렇게 불러냄을 받아 세상과 '영구적으로 분리된(Separated)'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질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질서(통치)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에클레시아의 실체'**입니다.
3. 결론: 애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를 향한 필연적 과정
이 문장에는 선명한 의도가 녹아 있습니다. 우리가 코이네 헬라어 **'클레토스'**와 히브리어 **'바이크라'**에 대한 확실한 **'애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 온전한 지식)'**를 가지고 가야만, 이후에 펼쳐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와의 관계 정립: 성령을 뜻하며 한국어에서 '보혜사'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가 단순히 '부름받은 자(클레토스)'와 같은 뜻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를 오해하면 성령님의 위격을 격하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클레토스(성도)'의 맞은편 혹은 곁(Para)에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부름받은 자(Kletos)를 마주하고 서서, 그 부르심을 완성하도록 돕고 가르치며 변호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Kletos/바이크라)'을 모르면, 우리 곁에서 우리 속을 낱낱이 감찰하시고 도우시는 성령(Parakletos)의 사역 또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11장의 성취와 연결: 이사야서 11장이 설명하는 **'주 하나님의 영'**과 그 영이 주는 **'여섯 가지 특성'**이 합쳐져 온전한 지혜와 총명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우리는 **'바이크라(부르심)'**의 원리에 입각하여 레위기의 거룩함에 순종하는 구별된 **'에클레시아'**가 되어야 합니다. 왜 여기서 성령론과 이사야서를 언급합니까? 그것은 사도 바울이 이어지는 2절에서 바로 **"이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며, 구약 성경(히브리 경전)을 복음의 토대로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절은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이크라'**로 부르시고 **'에클레시아'**로 구별하여, 마침내 성령의 충만한 **'애피그노시스'**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장엄한 구원 계획의 서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