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벨론의 진짜 목표: ‘모에드의 산’ 파괴
바벨론이 ‘모에드의 산’을 무너뜨리려는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괴롭히거나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본질적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때들, 곧 모에드를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겉으로는 영토 분쟁, 이념 갈등, 종교 충돌처럼 보이지만, 영적 차원에서 보면 이 모든 공격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모에딤을 끊어내려는 시도가 놓여 있다. 사탄의 전쟁 목표는 곧 “모에드의 산”을 허물어, 그 산에서 드려져야 할 모에딤 예배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2. 모에드를 노린 전쟁과 테러: 역사 속에 드러난 패턴
역사적으로 큰 전쟁과 테러가 하나님의 절기 시기와 겹치는 일은 우연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반복되어 왔다. 이는 사탄의 공격이 단순히 한 민족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키는 모에드, 곧 하나님의 시간표와 예배를 겨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① 욤키포르 전쟁 – 대속죄일을 정조준한 전쟁
1973년 욤키포르 전쟁은 이름 그대로 유대력에서 가장 거룩한 날, 대속죄일(욤키포르)에 맞추어 시작되었다. 온 이스라엘이 금식과 회개로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이다. 회개와 속죄, 용서의 모에드를 피와 공포로 뒤덮어, 그날의 거룩한 기능을 파괴하려는 영적 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② 육일전쟁과 샤부옷 – 모에드의 산을 둘러싼 전쟁
1967년 육일전쟁은 불과 여섯 날 만에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성전산까지 회복되는 전환점이 되었고, 곧이어 찾아온 샤부옷(칠칠절/오순절) 시기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와 하나님 앞에 섰다. 전쟁 자체는 군사·정치적 사건처럼 보이지만, 영적 층위에서는 “모에드의 산(성전산)”을 누가 차지하고, 누가 통제하며, 그 위에서 어떤 예배가 드려질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었다. 이후 성전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충돌은, 이 자리가 단순한 성지(聖地)가 아니라 모에드의 자리임을 계속 증언하고 있다.
③ 2023년 초막절 시기 테러 – 심하트 토라를 향한 학살
2023년 10월, 초막절을 마감하는 쉐미니 아체렛·심하트 토라 시기에 일어난 대규모 테러와 학살 역시 같은 패턴을 따른다. 초막절의 기쁨과 심하트 토라의 춤과 찬양이 있어야 할 그 날, 전례 없는 공격과 학살이 일어났다. 토라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념하는 모에드가, 피와 공포와 애통의 날로 바뀌어 버렸다. 이는 기쁨의 모에드를 무너뜨리고, 말씀의 절기 자체를 끊어내려는 사탄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하나의 공통된 고리를 가진다. 바로 “언약의 때”에 맞추어, 혹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전쟁과 테러가 집중된다는 점이다. 곧, 공격의 최종 목표가 민족 자체보다 모에드와 예배에 있다는 사실을, 역사가 반복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3. 출애굽기 5:1 – 첫 충돌 지점은 ‘절기’
출애굽기 5장 1절에서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에 서서 이렇게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해 절기를 지킬 것이다(하가그).’”
여호와께서 요구하신 것은 단순히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광야에서 여호와를 위해 절기를 지키는 것이었다. 즉, 모에드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파라오, 곧 바벨론 시스템이 가장 먼저 거부하고 공격한 지점은 노동력 문제가 아니라 “절기를 지키도록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벨론의 본질이 백성을 묶어 두고, 모에드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모에드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4. 예슈아, 하늘 참성소, 그리고 모에딤 예배
지금 예슈아께서는 하늘 참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서 계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모에딤 예배를 직접 드리신다. 이때 사탄과 바벨론의 공격 목표는 지상의 절기 행사를 단순히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예슈아께서 대제사장으로 드리시는 하늘 모에딤 예배에 성도들이 연합하여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려 한다.
땅에서 모에드를 끊어 버리면, 성도들은 예슈아의 모에딤 예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잃고, 하늘 참성소에서 드려지는 참된 예배와의 연결선이 끊어진다. 결국 “모에드의 산”을 파괴한다는 것은, 예슈아께서 주인 되신 그 모에드 산 안으로 들어가 함께 예배하는 길을 부수는 것과 같다.
5. 모에딤 예배 안에 포함된 하나님의 시간표
예슈아께서 대제사장으로 서 계신 모에딤 예배 안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표가 들어 있다. 첫달에 해당하는 초림절(출 12:1–2), 입성절(출 12:3), 매일 드리는 상번제, 샤밭 샤바톤, 월삭, 유월절의 준비일(출 12:4–5), 유월절(출 12:6–14), 무교절(출 12:15–20), 오메르-레시트 곧 부활절(레 23:9–14), 승천절, 오순절(레 23:15–21), 나팔절 곧 재림절, 대속죄일(욤키포르), 초막절 등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된다.
이 모에딤은 예슈아의 초림과 십자가, 부활과 승천, 성령 강림, 재림과 심판, 그리고 영원한 장막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의 때들이며, 동시에 하늘 참성소에서 예슈아가 실제로 드리고 계신 예배의 내용이다.
6. 결론: 모에드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
결국 바벨론과 사탄의 목표는 ‘모에드의 산’을 무너뜨려, 모에드를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예슈아께서 하늘 참성소에서 드리시는 모에딤 예배와 성도들의 연합을 끊는 데 있다. 그러므로 모에드를 기억하고 지키는 일은 단순한 절기 행사가 아니라, 대제사장이신 예슈아께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드리시는 모에딤 예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모에드를 지키는 것은 곧 모에드의 산 파괴를 향한 사탄의 공격에 맞서는 가장 본질적인 영적 저항이다.
엘-하르 와 베할
1. 엘־하르(אל־הר)와 בְּהַר(베할)의 구조적 대비
출애굽기 3장 1절의 “엘־הַר(엘-하르)”는 “산을 향하여, 산으로(to the mountain)”라는 방향성을 나타낸다. 전치사 אל(엘)은 기본적으로 “향하여, ~을 향해, to, toward”의 의미를 가지며, 구조적으로는 산 밖에서 그 산을 향해 나아가는 운동을 표현한다. 곧 모세는 처음에 산 “밖에서” 그 산을 향해 올라가는 존재로 서 있다.
이에 비해 이사야 14장 13절의 “בְּהַר־מוֹעֵד(베할 모에드)”는 “언약의 때-산에서, 언약의 때-산 안에서(in / at the mount of Moed)”라는 의미를 가진다. 전치사 בְּ(벳)은 “안에, 그 안에서, in, at”의 의미를 가지며, 그 대상은 “하르-모에드(모에드-산)” 전체이다. 이 표현은 “산에 모에드가 있다”는 구조가 아니라, “모에드-산 안에서, 그 영역 안에서”라는 구조이다.
요약하면,
אל־הר ≈ to-har → 그 산을 향하여 올라감(접근 단계)
בְּהַר ≈ in-har → 그 산 안에서, 그 영역 안에 있음(진입·체류 단계)
이렇게 해서 “밖에서 → 안으로”라는 분명한 흐름이 형성된다.
2. ‘벳(בְּ)’과 ‘in’ 개념: 성경적 관문 전치사
“태초에(in the beginning)”로 번역되는 “베레쉬트(בְּרֵאשִׁית)”의 첫 글자 벳(בְּ) 역시 단순한 시간 부사의 표지라기보다, 어떤 영역 안으로 들어감을 여는 관문적 전치사로 묵상할 수 있다. “~안에(in)”라는 의미를 넘어, 특정한 하나님의 경륜과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알(אל)과 벳(בְּ)을 함께 보면 다음과 같은 단계가 드러난다.
출 3:1 – אל־הר
“그 산을 향하여 가는” 접근 단계
사 14:13 – בְּהַר־מוֹעֵד
“모에드-산 안에서”라는 진입·내부 단계
곧 “그 산에 올라가야만, 그 산 안으로 들어간다”는 구조가 히브리어 전치사 אל / בְּ의 대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밖에서 산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가 엘(אל)이라면, 그 산의 영역 안으로 실제로 들어가 거하는 상태는 벳(בְּ)의 자리이다.
3. 모세, 예슈아, 모에드 산의 구조적 연결
이 구조는 모세, 예슈아, 그리고 모에드 산을 하나로 묶어 주는 신학적·명상적 틀을 제공한다.
모세의 경우, 출애굽기 3장 1절에서 “엘־הר(엘-하르)”라 할 때, 모세는 하나님의 산을 향해 올라가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움직임의 결과, 그는 결국 그 산, 곧 하나님의 산의 임재 영역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뵙게 된다. 밖에서 그 산을 향해 나아가는 알(אל)의 운동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슈아는 승천하신 분, 곧 올라가신 분이시며, 지금은 하늘 참 성소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대제사장이시다(히브리서 8–9장 구조). 이때 “하르-모에드(모에드-산)”는 예슈아께서 주인 되신 산, 참된 모에드의 자리, 예슈아 안에서 열리는 언약의 때의 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형성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그 임재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뵈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사람이 올라가신 예슈아, 곧 하늘 참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모에드 산” 안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게 된다. 알(אל)이 “to the mountain(엘-하르)”이라면, 벳(בְּ)은 “in the mountain(베할)”이다. 이것은 곧 “예슈아께로 나아가는 접근”에서 “예슈아 안에 거하는 내부”로 옮겨가는 구조적 평행이며, 모에드 산에 올라가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참된 모에드 예배가 열리는 질서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