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
그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의 διαλογισμός(디알로기스모스: 속생각·논쟁하는 생각)들이 μάταιος(마타이오스: 헛되어지다) 되었고, 그들의 ἀσύνετος καρδία(아쉬네토스 카르디아: 분별없는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가 σκοτίζω(스코티조: 어두워지다) 되었다.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의 ἐπιθυμία(에피튀미아: 욕구·정욕·갈망)들 안에서 ἀκαθαρσία(아카다르시아: 더러움)로 내버려 두셔서, 그들이 자기들의 σώμα(소마: 몸)들을 서로 ἀτιμάζω(아티마조: 욕되게 하다) 하게 하셨다.
(롬 1:28)
또 그들이 하나님을 ἐπίγνωσις(에피그노시스: 신약성경의 용법: 온전히 신령한 지식) 안에 두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ἀδόκιμος νοῦς(아도키모스 누스: 상실한 누스(누스: 생각·이해·사고 기능))로 내버려 두셔서,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행하게 하셨다.
(롬 2:5)
그러나 너는 네 σκληρότης(스클레로테스: 완고함)과 ἀμετανόητος καρδία(아메타노에토스 카르디아: 회개하지 않는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를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드러나는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고 있다.
(롬 2:15)
이런 이들은 율법의 ἔργον(에르곤: 행위)이 그들의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들 안에 γράφω(그라포: 기록되다) 된 것을 보이며, 그들의 συνείδησις(쉬네이데시스: 양심)도 함께 증언하고, 그들의 λογισμός(로기스모스: 추론·계산된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한다.
(롬 2:29)
오직 안쪽의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γράμμα(그람마: 문자) 안이 아니라 πνεῦμα(프뉴마: 영) 안에서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에 있는 것이니, 그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다.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니,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토 프뉴마 토 하기온: 거룩한 프뉴마(프뉴마: 영))을 통해 하나님의 ἀγάπη(아가페: 사랑)가 우리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들 안에 ἐκχέω(엑케오: 부어지다) 되었기 때문이다.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가 넘겨받은 가르침의 본에 ἐκ καρδίας(엑 카르디아스: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로부터) ὑπακούω(휘파쿠오: 순종하다) 했다.
(롬 7:23)
그러나 나는 내 지체들 안에서 다른 νόμος(노모스: 법)가 내 νοῦς(누스: 생각·이해·사고 기능)의 νόμος(노모스: 법)와 싸우며,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νόμος(노모스: 법)로 나를 αἰχμαλωτίζω(아이크말로티조: 사로잡다) 하는 것을 본다.
(롬 7:25)
우리 주 예슈아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나 자신은 νοῦς(누스: 생각·이해·사고 기능)로는 하나님의 νόμος(노모스: 법)를 섬기고, σάρξ(사륵스: 살·육체)로는 죄의 νόμος(노모스: 법)를 섬긴다.
(롬 8:27)
τὰς καρδίας(타스 카르디아스: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들)를 ἐραυνάω(에라우나오: 살피다) 하시는 분이 τὸ φρόνημα τοῦ πνεύματος(토 프로네마 투 프뉴마토스: 프로네마(프로네마: 사고 지향·방향성)인 프뉴마(프뉴마: 영)의 것)를 아시니, 이는 그가 하나님의 θέλημα(델레마: 뜻)를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ἐντυγχάνω(엔튀그하노: 간구하다) 하기 때문이다.
(롬 9:1)
내가 메시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내 συνείδησις(쉬네이데시스: 양심)가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토 프뉴마 토 하기온: 거룩한 프뉴마(프뉴마: 영)) 안에서 나와 함께 증언하니, 내게 큰 λύπη(뤼페: 근심·슬픔)가 있고 내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 안에 그치지 않는 ὀδύνη(오뒤네: 고통)가 있다.
(롬 10:1)
형제들이여, 내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의 εὐδοκία(유도키아: 바라는 선한 뜻)와 하나님께 드리는 δέησις(데에시스: 간구)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니, 곧 그들이 σωτηρία(소테리아: 구원)를 받게 하려 함이다.
(롬 10:6)
그러나 πίστις(피스티스: 믿음)에서 난 의는 이렇게 말한다, “네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 안에서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말하지 말라” 하니, 이는 메시아를 내려오게 하려는 것이다.
(롬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τὸ ῥῆμα(토 레마: 말)가 네게 가까이 있어 네 στόμα(스토마: 입) 안에 있고 네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 안에 있으니, 이것이 우리가 전파하는 πίστις(피스티스: 믿음)의 ῥῆμα(레마: 말)다.
(롬 10:9)
네가 네 στόμα(스토마: 입)으로 예슈아를 주님이라 ὁμολογέω(호몰로게오: 시인하다) 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ἐγείρω(에게이로: 일으키다) 하신 것을 네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 안에서 πιστεύω(피스튜오: 믿다) 하면, 너는 구원을 받는다.
(롬 10:10)
사람은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로 믿어 의에 이르고, στόμα(스토마: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롬 11:20)
옳다, 그들은 ἀπιστία(아피스티아: 믿지 않음)로 인해 꺾였고 너는 πίστις(피스티스: 믿음)로 서 있으니, ὑψηλοφρονέω(휩세로프로네오: 높게 생각하다) 하지 말고 도리어 φοβέομαι(포베오마이: 두려워하다) 하라.
(롬 11:34)
누가 주님의 νοῦς(누스: 생각·이해·사고 기능)를 알았느냐, 누가 그의 σύμβουλος(쉼불로스: 조언자)가 되었느냐?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ἀνακαίνωσις(아나카이노시스: 새롭게 됨)의 νοῦς(누스: 생각·이해·사고 기능)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θέλημα(델레마: 뜻), 곧 선하고 기쁘시며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 δοκιμάζω(도키마조: 분별해 확인하다) 하라.
(롬 12:16)
서로를 향하여 τὸ αὐτὸ φρονέω(토 아우토 프로네오: 같은 것을 생각하다) 하고, τὰ ὑψηλά φρονέω(타 휩셀라 프로네오: 높은 것들을 생각하다) 하지 말며, 도리어 τοῖς ταπεινοῖς(토이스 타페이노이스: 낮은 것들·낮은 자들)과 함께 이끌려 가고, 너희 자신 곁에서 φρόνιμος(프로니모스: 지혜롭다) 하게 되지 말라.
(롬 14:5)
어떤 이는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낫게 κρίνω(크리노: 판단하다) 하고, 어떤 이는 모든 날을 같게 κρίνω(크리노: 판단하다) 하니, 각자는 자기 자신의 νοῦς(누스: 생각·이해·사고 기능) 안에서 πληροφορέω(플레로포레오: 확정되어 충분히 납득하다) 하라.
(롬 15:6)
이는 너희가 ὁμοθυμαδόν(호모튀마돈: 한-충동으로 같은 방향으로) ἓν στόμα(헨 스토마: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슈아 메시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다.
(롬 16:18)
이런 자들은 우리 주 메시아를 섬기지 않고 자기들의 κοιλία(코일리아: 배)만 섬기며, χρηστολογία(크레스토로기아: 그럴듯한 말)와 εὐλογία(율로기아: 칭찬하는 말·아첨하는 말)로 ἄκακος(아카코스: 순진한) 자들의 καρδία(카르디아: [살(육체)이 원하는 것의 중심])들을 ἐξαπατάω(엑사파타오: 미혹하다) 한다.
로마서 강해 서론
로마서를 “대충 이해한 것”과 “정확히 아는 것” 사이에는
복음의 형태 자체가 달라질 정도의 간격이 있습니다.
로마서는 감상문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논증으로 정리한 텍스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가르친다는 것은,
좋은 말로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본문이 세워 놓은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도록 안내하는 일입니다.
먼저, 제가 이 강의를 어떤 방식으로 해 왔는지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원어 성경의 필요성, 그리고 번역이 만들어내는 오해와 한계를 제기하기 시작한 지 17년째입니다.
지금은 그 문제제기를 말로만 하는 단계가 아니라,
여러분이 보시는 웹사이트에 ‘직역 성경’ 형태로 구축하여
원문을 누구나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강의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해했다”가 아니라
“바울이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를 확인 가능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
그래서 원칙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저는 원문에 근거해서, 그리고 원어 문법과 문장 구조에 입각하여 전하겠습니다.
문법은 과시가 아닙니다.
로마서는 문법을 놓치는 순간 논증이 끊기고 의미가 바뀌는 구절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한국 교회 안에는 오래된 오해가 있습니다.
성경을 정확히 읽자고 말하면 곧바로 “문자주의”로 몰아붙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정확성은 문자주의가 아니라
자의적 해석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번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깁니다.
헬라어의 핵심 단어들—
카르디아, 누스, 프쉬케, 프뉴마—
이 단어들은 초점이 다른데, 번역에서 섞이며 개념이 혼합될 때가 있습니다.
개념이 흐려지면, 본문이 말하기보다
해석자의 이해가 본문을 대신 말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하겠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구절은 과감히 통과하겠습니다.
대신 번역만으로 오해하기 쉬운 지점—논증의 전환점과 핵심 개념—을
콘텍스트 중심으로 정확히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의에서 다룬 구절은 반드시
웹사이트로 오셔서 원문 구조와 직역, 번역을 직접 확인하십시오.
로마서는 “들은 만큼”이 아니라
검증한 만큼 정확해지는 책입니다.
이제 로마서 1장의 첫 문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율법의 범위
바울이 말하는 율법(노모스)은 토라 중 출애굽기–신명기를 가리킨다.
창세기는 결코 율법이라 부르지 않았다. (갈 3:17 “430년 후에 생긴 율법”)
따라서 창세기는 언제나 약속과 믿음의 책으로 사용되었다.
바울의 기본 입장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롬 7:12)고 선언했다.
다만 율법 준수의 방식은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방식이어야 한다. (롬 10:4)
절기(모에딤)에 대한 태도
고전 5:7–8 → “유월절을 지키자.”
바울은 예슈아가 유월절 어린양 되심을 믿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절기를 성수하라고 명령했다.
갈 4:10–11 →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파라테레오 (테레오(성수)와 대비를 이루는 표현…”
여기서 바울이 질타한 것은 모에딤 자체가 아니라,
“예수 믿으면 모에딤은 필요 없다”는 이방적 가르침을 따라 공동체의 성수가 무너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바울은 “내 수고가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정리
바울: “토라는 100%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방식이다.
절기는 폐해진 것이 아니라, 예슈아 안에서 본질대로 성수해야 할 하나님의 모에딤이다.
(Version: August 31, 2025)
사도 바울은 토라를 가장 존귀한 언약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었다(시편 1편, 2편, 119편 참조). 그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성령의 검”이라 표현하였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살아서 역사하시고 사람을 변화시키며, 영혼을 수술하시고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의 말씀이다. 또한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라고 철저히 믿는 신앙인이었다.
로마서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기록된 책이다. 따라서 결코 라틴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 사용자의 문화와 사상으로 동일하게 판단하거나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풀다가 토라의 완성을 믿지 않고, 토라를 폄하하고 대적하여 “율법주의자” “문자주의자”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모에드(언약의 절기와 규례)를 대적하는 악한 영들과 동조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철저히 유의해야 한다.
히브리서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11:39–4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마태복음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완성이전의 율법과 제사 규정 아래 있는 상태
가축과 그 피
각종 예배와 제사를 위한 인간 제사장
땅 위의 건물 성전 개념
인권보다 토라 스크롤이라는 물건을 거룩하게 여김
완성되기 이전,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상태
돌로 쳐 죽여라
나무에 매달아 죽여라
안식일을 어기면 죽여라
죄와 연합된 본성을 숨긴 위선적 해석과 적용
안식일을 명분으로 중상모략과 살인
십계명의 이웃 사랑은 외면하고 잔인하게 율법 적용
율법 전체 요구를 따르지 않고 교리를 만들어 부분적 취사선택
메시아 예슈아의 십자가 공로를 믿지 않고, 율법 준수로 구원 얻으려는 행위
율법의 최종 판결 구절들
돌로 쳐 죽이라
신명기 13:10
“너는 반드시 그를 죽일지니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온 백성이 손을 대어 그를 죽이라. 너는 돌로 쳐서 죽이라.”
신명기 21:21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 것이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신명기 22:21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돌로 쳐 죽일 것이니, 이같이 네가 네 중에서 악을 제하라.”
나무에 달아 죽이라
신명기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여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라
신명기 13:5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 네가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명기 17:7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온 백성이 손을 대어 그를 죽일지니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신명기 19:19
“너희는 그에게 그 형제가 그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행하여 네 중에서 악을 제하라.”
신명기 22:22
“남의 아내와 동침한 자는 남자와 여자를 다 죽여 너는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라.”
“율법 아래” 결론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는 율법의 최종 판결은, 예슈아 메시아 없이 문자적으로 집행하려 한다면 모든 죄인을 다 죽여야만 끝이 난다. 이는 곧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 전 인류가 멸망해야만 마무리되는 불가능한 명령이다. 따라서 이 명령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도, 집행될 수도 없다. 오직 메시아 예슈아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받으심으로(신 21:23, 갈 3:13) 이 율법의 판결은 단번에 성취되었다. 그분의 십자가 안에서만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는 율법의 최종 명령이 참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대속함을 입은 자들이라도 인생을 살면서 자범죄를 짓게 된다. 그때에 천국 참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예슈아 메시아를 의지하는 회개의 기도와 예배가 이를 씻어주심을 믿어야 한다.
요한일서 5:16 (예슈아 직역)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그에게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나는 이것을 두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
로마서의 난제: 율법을 행함 vs 율법의 행위
로마서 2:13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로마서 3:20
“율법의 행위들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로마서 2:13 — 선한 행위
헬라어: οἱ ποιηταὶ νόμου δικαιωθήσονται
(hoi poiētai nomou dikaiōthēsontai, 호이 포이에타이 노무 디카이오데손타이)
직역: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다 함을 얻으리라.”
→ 성령 안에서 우러나는 참된 순종. (예: 눅 1:6 사가랴·엘리사벳)
로마서 3:20 — 위선적 행위
헬라어: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οὐ δικαιωθήσεται πᾶσα σάρξ
(ex ergōn nomou ou dikaiōthēsetai pasa sarx, 엑스 에르곤 노무 우 디카이오데세타이 파사 사르크스)
직역: “율법의 행위들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리니.”
→ 구원의 근거로 삼는 외식적 행위, 자기 의.
핵심 정리
“율법의 행위”는 두 가지 경우로만 사용된다.
성령 안에서 순종하는 선한 행위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는 위선적 행위
κρίνω (krinō, 크리노) = 판단하다 (재판관 행위)
κρίμα (krima, 크리마) = 판결, 재판의 결과
κρίσις (krisis, 크리시스) = 심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νοῦς (nous, 누스) = 이성, 지성, 사고 능력
καρδία (kardia, 카르디아) = 마음, 존재의 중심
γράμμα (gramma, 그라마) = 문자
γραφή (graphē, 그라페) = 성경
πνεῦμα (pneuma, 프뉴마) = 영
ψυχή (psychē, 푸쉬케) = 혼, 생명
σάρξ (sarx, 사륵스) = 육체
토라와 복음: 복음은 토라를 폐지하지 않음
애굽 = 용광로: 하나님의 백성을 단련
문자 vs 성경:
γράμμα (그라마) = 바울은 단순히 **글자로 기록된 토라(γράμμα, 그라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의롭다 말할 수 없음을 지적할때 사용되었다.
γραφή (그라페) = 살아 있는 말씀에만 사용되었다.
모든 단어는 동일 규칙으로 번역
문맥은 반드시 토라와의 관계 속에서 해석
“율법 아래”는 “죄와 연합된 상태, 죄에 묶인 상태”를 함축하는 표현이다.
κρίνω 관련: 롬 2:1은 인간이 심판주처럼 굴며 죄/의 기준을 바꾸는 행위를 경고
Χριστός Ἰησοῦς /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Christos Iēsous / Iēsous Christos): 반드시 “예슈아 메시아”로 번역
롬 2:15: καρδία(카르디아)와 νοῦς(누스)의 관계 — 거듭난 자는 혼과 육조차도 누스(거룩한 지성)의 지배 아래 사용됨